Executive Orders

 

저  자 : 톰 클랜시
출판일 : 1996
출판사 : 미국 Berkley Books
쪽  수 : 1358면
가  격 : $7.99
국내 미 번역작임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아 읽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면 알레르기부터 난다.) 여기에 실린 평은 하이텔의 군사동호회 오발탄란에 있는 홍승진(하이텔 ID : cleancut / E-Mail : cleancut@hitel.net)님이 쓰신 것이다. 내용 전재를 허락해 주신 홍승진님께 감사드린다. 홍승진님은 <월간 항공>이라는 잡지에 전쟁영화, 소설, 만화 등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만일 이 내용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면 내가 아니라 홍승진님께 허락을 구해야 할 것이다.

  디펜스 코리아의 게시판에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전차전(미 육군 기갑기병연대와 이란-이라크 연합군과의 전투)은 비록 분량은 적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압권이었다는 평이 많았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쓴 것은 이 색깔로 된 것 뿐이다.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었다. 문고판으로 13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양이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분량의 소설이라면 3권은 되고도 남을 분량이다. 이 책은 1996년에 처음 미국에서 출간되어 뉴욕 타임즈 집계 인기순위에서 상당기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다른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인기를 얻은 책이다.
  소위 말하는 테크노 스릴러의 장르로 분류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김경진씨가 이쪽 분야의 소설인 <데프콘> 1, 2, 3부를 내놓아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역시 밀리터리 스릴러의 대가는 탐 클랜시이다. <붉은 10월> <붉은 폭풍> <패트리어트 게임>, 최근의 <적과 동지>에 이어지는 최신작품이 바로 이 <Executive Orders>이다. 사실 김경진씨의 <데프콘.. > 시리즈도 탐 클랜시의 <붉은 폭풍>과 서술 스타일이 매우 유사하다.
  이상한 것은 이 책이 미국에서 선을 보인지 2년이나 경과했는데도 국내의 어느 출판사도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을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의 출판문화 풍토가 이런식의 "테크노 스릴러"(또는 밀리터리 스릴러?)가 90년대 초반의 반짝인기 이후에는 별다른 재미를 못볼 정도로 잘 안 팔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고, 그리고 최근 탐 클랜시의 저작을 인세계약을 맺고 출간해오던 도서출판 고려원의 부도도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역시 엄청난 판매고를 자랑하는 히트작가인 존 그리샴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제깍 번역서가 나오는 것에 비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Executive Orders의 줄거리
  클랜시의 팬들은 지난번 작품 <적과 동지(Debt of Honor)> 마지막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책이 마무리가 될려는 찰나, 일본의 한 747 여객기가 미국 대통령과 3부 요인들이 모여있는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돌진한다. 이 사고로 대통령인 로저 덜링을 비롯, 대부분의 각료와 국회의원, 대법원 판사들이 사망한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공 잭 라이언이 대참사가 있기 불과 몇분 전에 부통령직을 수행하기로 선서를 했다는 사실이다. 전직 부통령은 여자 스캔들 문제로 사임하기로 하고, 부통령직 수락 선서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 일본의 747 여객기가 가미가제식으로 덤벼든 것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죽었으니까 자동적으로 권한대행은 부통령이 하게 된다.
  전편은 이 장면에서 끝나는데, 이번 소설 <Executive......>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우리의 주인공 잭 라이언이 망가진 국가체제를 수습하고 국내외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장장 1300여 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된 잭 라이언에게는 각료가 거의 안 남아 있다. 대부분 국회의사당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일단 각부 장관을 비롯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내각을 구성해도 임명동의를 해줄 국회가 없다. 국회의원이 다 죽어버렸지 않은가? 국회의원도 뽑아야 한다. 그리고 대법원도 구성원이 없다. 다들 새로 임명해야 하는 것이다. 절름발이가 된 국가기관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서 대통령 자리를 떠맡는 사태가 해결해야 할 1순위의 일이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이라크의 독재자(아마도 후세인?)이 암살된다. 이란의 지도자는 이를 기화로 이란과 이라크를 통일하여 "통일 이슬람 공화국"이란 나라를 만든다. 이란의 지도자 Daryaei는 미 제국주의자들을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을 신의 명령으로 생각하는 이슬람 광신도. 이런 사람이 중동에서 제일 큰 나라를 지배하게 문제가 될 수밖에...
  게다가 일본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타격을 입은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의 분쟁지역을 모두 커버할 능력이 없다. 이때, 전편에서도 연결되는 스토리로 중국이 중화민국(대만)을 침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미국은 손상된 존 스테니스와 엔터프라이즈 전투단 대신에 인도양에 있는 아이젠하워 항모를 대만으로 보낸다. 이 사이에 인도가 이란-중국과 모의를 거쳐 인도해군의 항모를 인도양으로 내보내 미 해군력과 이란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사표를 낸 전 부통령 Ed Kealty가 자신의 사표가 수리되기 전에 대통령이 사망했으므로 라이언의 대통령직 승계는 무효이며, 자기가 정당한 대통령 권한 대행권자라는 주장을 펴서 여론을 유리하게 만드는 공작을 꾸민다. 정치적인 술수를 부릴 줄 모르는 라이언은 그의 주장에 말려들어 고전을 하고...
  이란의 독재자는 미국이 제대로 국가적 기틀을 다시 만들기 전에 중동지역을 통일하려고 한다. 미국의 행정기관 중 거의 유일하게 기능하는 대통령만 죽이면 될 것이다. 우선 테러리스트를 보내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납치 또는 암살을 기도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시도. 두 번째는 강력한 치사율을 가진 병원체인 "에볼라 바이러스"(요즘 이 병원체는 각종 영화, 소설에 너무 자주 등장한다 - 악명 높은 병이다)를 전국의 주요 도시에 살포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미국 대통령 경호실에 숨은 암살자를 활용해 대통령을 없애려는 시도를 한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공세에 정신없는 미국. 미국 전역에서 수천명의 에볼라 열병환자가 발생하여 80%의 치사율답게 상당수의 환자가 사망한다.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발동, 모든 공공활동을 금지하고 각 주(州)사이의 통행을 금지한다. 전국의 군 부대에도 병원체가 감염되어 군작전도 상당 부분 어려워진다. 이 사이에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침공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독자들의 예상대로 잭 라이언은 모든 국제적, 국내적 시련을 극복하고 자랑스런 대통령으로 국가를 이끌게 된다. 사우디를 침공한 이란-이라크 연합군을 물리치는 것은 물론이고. 재선에 도전할 것을 암시하여 다음 편 소설이 연속될 것을 명백히 하면서 끝난다.

 

클랜시 소설의 종합판 "Executive Orders"
  이 소설은 그 동안 잭 라이언이 등장하는 탐 클랜시 소설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크레믈린의 추긱경> <마약전쟁(clear and present danger)> <적과 동지> 5편을 종합하는 책이다. (이처럼 잭 라이언이 등장하는 클랜시의 소설을 <잭 라이언 시리즈>라고 한다) 대통령의 그 간의 행적이 하나하나 나열되면서 그동안 작가의 책들에 등장한 라이언의 활약상이 언급된다. 또한 그의 책들에 나온 다른 보조 출연자(?) - 잭슨 제독, CIA 요원 클라크, 패트릭 오데이 수사관, 아들러 국무장관..등등... - 들이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 책들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안 본 사람이라면 무슨 소린지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전편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뻔히 아는 747 충돌사고 등의 조사 내용이 지리하게 앞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조금 호흡이 느리게 느껴지는 점이 단점이며, 내용 전개상의 결점이라면 이란의 독재자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고 나서 멍청한 실수를 해서 이란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점, 그리고 숨겨놓은 암살자와 약간은 웃기는 테러리스트의 허무한(?) 결말은 이 책 구성의 약점이다. 또한 아쉬운 것은 전편 <적과 동지>에서는 F-22나 RAH-66 코만치, FX-2 등 최신무기(심지어 아직 실전배치도 안 된)들이 등장해서 활약상을 보여 주었는데 비해, 여기서는 다양한 신무기들의 등장이 별로 없다는 점이 읽는 재미라는 면에서 많이 아쉬운 점이었다.

 

여전한 미국 제일주의적 시각은 문제
  이 책은 재미가 있다. 클랜시의 소설답게 읽을만한 책이다. 하지만 작가의 소설 중에서 최고라고 하기는 좀 미안하다. 그리고 미 국제일주의(클랜시가 레이건 시대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가 지나치게 부각되어 조금 역겹기는 하다. 또한 책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편견으로 이슬람 교도는 다들 악당이고 약간씩은 좀 어벙하다라는 종교 차별적인 설정도 눈에 거슬린다. 결국 미국은 전세계의 민주질서를 바로잡을 유일한 경찰국가, 최강대국으로서 어느 지역이던지 자기들이 관리하지 않으면 전세계가 망한다는 듯한 기본 시각은 여전한 것이다.
  여하튼 이 책 <Executive...>는 테크노 소설에 목마른 국내 독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책이다. 아직 번역판이 안 나왔기는 하지만 사실 영어공부도 할 겸 본다면 그리 부담스러운 내용도 아니다. 내용상의 어려움보다는 분량과 마치 삼국지를 방불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중구난방으로 등장해서 구별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이 좀 문제이기는 한데, 6∼7000원짜리 번역판 3권을 사서 보느니 8000원 정도하는 원서로 보는게 IMF 시대에 경제도 어려운데 비용상으로는 경제적일 수도 있다. 게다가 다른 클랜시 소설에서 보듯이 국내에 아직 군사 테크노 소설을 제대로 번역할만한 지식을 갖춘 번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도 번역판을 살 유인을 없애기도 한다.

 

다음 작품의 기대?
  꾸준히 2년 정도에 한 권씩 신작소설을 내는 탐 클랜시의 주기로 본다면 또 새로운 책이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마 다음 번에는 대통령 잭 라이언이 재선에 성공하고, 응징해야 할 악의 무리는 아무래도 중국이 될 것 같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서... 어쩌구 저쩌구.... 가 될 것 같은게 아마도 합리적인 예측이리라. 이미 러시아, 콜롬비아, 일본, 이란, 이스라엘을 다 건드려봤으니 이제는 중국하고 북한 정도만 남지 않았는가.
(OP 센터라는 작품에서 북한을 건드리지만, 주적은 아니고 다만 배경으로 사용될 뿐이다.)
  다만 앞으로는 아무리 국내 번역문학의 풍토가 척박하더라도 기본적인 것조차도 안 갖추어진 번역판은 안보았으면 한다. 제발이다.

 -1997. 12. 13. 홍승진(cleancut)

 

  사족 : 'executive orders'를 우리말로 뭐라고 옮기면 제일 적당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 후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긴 했는데 여기에 쓰기 싫은 건 왜 일까? (행정 명령, 대통령령이라고 번역될 것 같은데, 책을 읽지 않았으니 이 책의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제목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합중국 붕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2000년 5월 31일 작성